
영화 '랑종' 심층 분석: 태국 샤머니즘과 공포의 교차점
나홍진 감독이 기획하고 '셔터'의 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이 연출한 영화 '랑종'은 2021년 여름 개봉 당시 뜨거운 논쟁과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태국의 깊은 샤머니즘 문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극한의 공포는 단순한 오컬트 영화를 넘어, 인간의 믿음과 나약함, 그리고 업보에 대한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집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관객을 더욱 혼란스러운 공포의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는 이 영화의 줄거리, 그리고 복합적인 해석이 가능한 결말과 그에 대한 다채로운 리뷰를 심층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줄거리: 신의 대물림, 혹은 악마의 잠식
영화는 태국 북동부 이산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됩니다. 이곳에서는 대대로 '바얀 신'을 모시는 '랑종', 즉 무당이 존재합니다. 다큐멘터리 제작팀은 현 시대의 랑종인 '님'을 취재하며 태국의 토속 신앙과 그들의 삶을 담아내려 합니다. 님은 원래 언니인 '노이'가 무당이 되어야 했지만, 노이가 신내림을 거부하면서 대신 랑종의 길을 걷게 된 인물입니다. 님은 바얀 신을 향한 깊은 존경과 믿음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평화로워 보이던 마을에 불길한 기운이 감돕니다. 노이의 딸이자 님의 조카인 '밍'에게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신병으로 여겨졌던 밍의 변화는 점차 기괴하고 폭력적인 형태로 발전합니다. 밍은 알 수 없는 언어로 중얼거리고, 충동적으로 행동하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피폐해져 갑니다. 그녀의 눈빛은 공허함과 분노로 가득 차 있고, 때로는 섬뜩한 웃음을 짓기도 합니다.
님은 밍에게 씌인 것이 바얀 신이 아님을 직감합니다. 오히려 훨씬 더 사악하고 강력한 악령이 밍의 몸을 잠식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밍의 상태가 악화될수록 가족들은 극한의 공포에 휩싸이고, 촬영팀 역시 상상할 수 없는 충격적인 현상들을 목격하게 됩니다. 밍의 몸에 깃든 악령은 단순한 영혼이 아니라, 그녀의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비극적인 업보와 잔혹한 과거가 응축된 존재임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노이의 남편인 '마닛'의 방직공장에서 벌어진 과거의 화재 참사와 관련된 원혼들, 그리고 가문 내부에 숨겨진 어두운 비밀들이 밍의 빙의와 깊은 연관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님과 가족들은 밍을 구원하기 위해 마지막 희망을 걸고 퇴마 의식을 준비하지만, 이미 악령은 밍의 영혼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리뷰: 공포의 스펙트럼과 논란의 지점
'랑종'은 개봉 전부터 나홍진 감독의 참여로 '곡성'과의 비교 대상이 되었습니다. '곡성'이 미스터리와 복선을 촘촘하게 쌓아 올리며 관객을 혼란스러운 의심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면, '랑종'은 직설적이고 시각적인 공포에 집중합니다. 영화 초반, 다큐멘터리 형식을 통해 태국의 풍습과 샤머니즘을 차분하게 소개하는 방식은 관객에게 이질적인 문화에 대한 몰입감을 부여하며, 이어질 공포에 대한 현실감을 높입니다. 밍의 빙의 현상이 본격화되면서 영화는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치닫고, 그녀의 기이한 행동과 충격적인 외모 변화는 관객에게 강렬한 심리적 압박감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특히 퇴마 의식이 진행되는 과정과 그 이후의 전개는 극명하게 평가가 엇갈립니다. 일부 관객들은 극한의 잔혹성과 충격적인 비주얼이 선사하는 강렬한 공포감에 압도당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밤에 진행되는 퇴마 의식 장면들은 고어적인 요소와 함께 극도의 불쾌감을 유발하며 관객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반면, 과도한 잔혹성과 예측 가능한 점프 스케어, 그리고 다큐멘터리 형식의 한계로 인해 몰입이 깨진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밍이 악령에 잠식된 후 보여주는 행동들이 마치 좀비처럼 느껴지거나, 극도의 공포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놓지 않는 촬영팀의 비상식적인 행동 등이 현실감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랑종'은 '업보의 대물림'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다룹니다. 가문이 대대로 지어온 죄와 그로 인한 원혼들의 저주가 밍에게 집중되어 나타나는 모습은, 인간의 무지와 탐욕이 어떻게 비극적인 파국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님이 인터뷰에서 바얀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내는 장면은 '믿음'이라는 추상적인 개념과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이는 '곡성'이 던졌던 '무엇을 믿을 것인가'라는 질문과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결말: 희망 없는 파멸, 그리고 믿음의 허무함
'랑종'의 결말은 어떠한 희망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파멸로 치닫습니다. 밍에게 빙의된 악령은 님의 퇴마 의식에도 불구하고 전혀 통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악령은 밍을 통해 더욱 거대한 힘을 발휘하며, 밍은 완전히 악령의 숙주가 되어 가족과 촬영팀에게 끔찍한 학살을 자행합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님마저 악령의 위협으로 무력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마지막까지 카메라를 놓지 않고 이 모든 참상을 담던 촬영팀원들마저 악령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됩니다. 화면은 지옥 같은 현장을 그대로 비추며 관객에게 극도의 충격을 선사합니다.
영화의 가장 인상 깊은 결말 부분은 이 모든 비극이 끝난 후, 님이 과거 인터뷰에서 "한 번도 바얀 신의 존재에 대해 확신한 적이 없다"고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이 한 마디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허무주의와 비극성을 극대화합니다. 평생을 바얀 신을 모시며 살아왔던 무당조차 자신의 신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는 고백은, 과연 우리가 무엇을 믿고, 무엇에 의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밍에게 씌인 악령이 단순한 개별 영혼이 아니라, 수많은 동식물의 원혼과 가문의 오랜 업보가 뒤섞인 복합적인 존재였음을 암시함으로써, 인간의 죄와 그로 인한 고통이 어떻게 대물림되는지에 대한 암울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결국 '랑종'은 신(神)이 부재하거나, 혹은 존재하더라도 인간의 고통에는 무심한 세계를 그려냅니다. 인간이 쌓아 올린 업보는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고, 그 속에서 희망을 찾기란 불가능함을 보여주는 비극적인 결말은 오컬트 호러 장르를 넘어선 인간 본연의 공포와 절망감을 선사합니다. 이 영화는 단순히 무서운 장면만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관객으로 하여금 인간과 신의 관계, 그리고 업보의 무게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