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슈퍼맨, 망토 아래 가려진 고뇌: '맨 오브 스틸'
멸망의 씨앗, 그리고 탄생의 역설
'맨 오브 스틸'은 단순히 슈퍼맨의 기원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그의 존재론적인 고뇌에 깊이 천착합니다. 이야기는 파멸 직전의 크립톤 행성에서 시작됩니다. 자원 고갈과 내부 권력 다툼으로 자멸의 길을 걷던 크립톤. 이때 조-엘은 아들 칼-엘을 지구로 보내며 크립톤의 마지막 희망을 심죠. 이는 훗날 지구의 구원자가 될 슈퍼맨의 비극적인 탄생 배경을 제시하며, 그의 존재 자체가 이미 멸망과 직결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동시에, 크립톤의 질서를 지키려 했던 군인 조드 장군은 쿠데타 실패로 팬텀 존에 유폐됩니다. 그의 비극적인 운명은 훗날 슈퍼맨과의 피할 수 없는 대결 구도를 형성하며, "어떤 대의를 위한 행동인가"라는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지구에 도착한 칼-엘은 켄트 부부의 손에서 클라크 켄트로 성장합니다. 그는 비범한 능력 때문에 늘 이방인처럼 느껴야 했습니다. 양아버지 조나단의 희생은 클라크에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을 안겨주고, 그는 방랑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마침내 북극의 크립톤 우주선에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마주하며 슈퍼맨으로서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죠.
하지만 평화로운 자기 발견의 시간도 잠시, 조드 장군이 지구에 당도합니다. 그는 지구를 새로운 크립톤으로 테라포밍하여 멸망한 자신의 종족을 부활시키려 합니다. 조드의 등장은 슈퍼맨에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합니다. 망설이던 클라크는 결국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지구를 지키기 위한 싸움에 나섭니다.
스타일리시한 파괴, 그리고 스토리의 딜레마
'맨 오브 스틸'은 잭 스나이더 감독의 시그니처가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스나이더 스타일의 압도적인 미학
이 영화의 가장 큰 강점은 단연 시각적인 스펙터클입니다. 슈퍼맨과 조드 장군의 대결은 그야말로 재앙에 가깝습니다. 메트로폴리스의 빌딩들이 뼈대만 남기고 무너지며, 두 초인의 충격파는 도시 전체를 뒤흔듭니다. '어벤져스'의 뉴욕 전투가 깔끔한 연출이었다면, '맨 오브 스틸'은 날것 그대로의 파괴를 보여주며 관객을 압도합니다. 한스 짐머의 웅장하고 비장한 음악은 이러한 시각적인 충격에 감정적인 깊이를 더하며, 특히 슈퍼맨이 비로소 하늘을 나는 장면은 OST와 어우러져 전율을 선사하죠.
헨리 카빌은 슈퍼맨의 아이코닉한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구현해냈습니다. 육중한 근육질 몸매와 진지한 표정은 고뇌하는 슈퍼맨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며, 기존의 밝고 유쾌한 슈퍼맨과는 다른, 현실적인 무게감을 부여했습니다.
놓쳐버린 서사적 균형
하지만 '맨 오브 스틸'은 이러한 시각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스토리텔링의 아쉬움을 지적받습니다. 슈퍼맨의 내면적 갈등이나 그가 겪는 고뇌가 충분히 깊이 있게 다뤄지지 못했습니다. 캐릭터 간의 관계성도 피상적으로 그려져 감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웠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특히, 슈퍼맨과 조드의 싸움으로 인한 도시의 과도한 파괴는 영웅으로서의 슈퍼맨의 책임감을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과연 슈퍼맨이 도시를 지키고 있는가, 파괴하고 있는가?"라는 아이러니한 질문을 남기기도 했죠.
논쟁의 화룡점정: 슈퍼맨의 '선택'
이 영화의 가장 큰 논란이자 핵심은 바로 엔딩 시퀀스입니다. 메트로폴리스를 초토화시킨 조드 장군과의 처절한 전투 끝에, 슈퍼맨은 결국 그를 제압합니다. 하지만 조드는 마지막까지 인간을 향해 히트 비전을 발사하려 하고, 슈퍼맨은 이를 막기 위해 조드의 목을 부러뜨려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 장면은 슈퍼맨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점에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오랜 시간 슈퍼맨은 '불살'의 원칙을 지키는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통해 슈퍼맨에게 인간적인 고뇌와 한계를 부여합니다. 그는 단순한 초인이 아니라, 인류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최악의 선택을 해야만 했던 존재로 그려지며, 이로 인한 죄책감과 고통을 내비칩니다. 이는 슈퍼맨이라는 캐릭터를 더욱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결말에서 슈퍼맨은 마침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 인류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릅니다. 클라크 켄트가 기자로서 데일리 플래닛에 입사하는 장면은 앞으로 그가 겪게 될 수많은 모험과 다른 히어로들과의 만남을 예고하며, DC 확장 유니버스의 문을 활짝 열어젖힙니다.

'맨 오브 스틸', 논쟁을 넘어선 새로운 시작
'맨 오브 스틸'은 슈퍼맨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우리의 오랜 관념을 뒤흔들며,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작품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영화가 DC 확장 유니버스에 독자적인 색채와 방향성을 제시했으며, 슈퍼맨을 단순한 영웅이 아닌 고뇌하고 번뇌하는 존재로 재해석하려는 과감한 시도였다는 점입니다.